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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19:01 삶/斷想

도서관 단상(斷想)

- 나에게 도서관은…….

                            박병철

- 유리성 -

나에게 도서관은 언제나 반짝 빛나는 유리성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나는 비슷한 처지의 그네들이 그렇듯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같이 도서관을 찾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도서관까지는 서둘러서 걸으면 15분 정도 되는 거리였지만 한여름에는 결코 가까운 거리라고도 할 수 없었다. 햇볕을 피한다고 부지런히 걷다가 구레나룻 언저리에 땀방울이 돋아날 때쯤 되어서 보면 언제나 도서관 앞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손바닥을 펴 햇빛을 가리고 도서관 건물을 쳐다본다. 아니 우러러본다. 유리창에 반사된 빛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가고 있다. 그렇게 도서관은 도도하게 제 자태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 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모습이 꼭 유리성 같다.

 

 

- 만남 -

나는 도서관을 찾을 때면 마음이 설렌다. 처음 선을 보러 나가는 아가씨처럼 가슴이 뛴다. 슈베르트의 숭어처럼 경쾌하다. 내가 오늘 만나게 될 사람은 누굴까? 그는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내가 찾고 꿈꾸던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도서관 문을 밀치고 들어선다. 도서관 특유의 고즈넉함과 은은한 책 내음이 나를 차분하게 한다. 사뿐히 걸어 관심 있는 책들이 꽂혀져 있는 책장 앞으로 다가간다. 그 앞에 서면 다시 가슴이 뛴다. 못 보던 녀석들이 새로 얼굴을 내밀고, 나의 흥미를 사기에 충분한, 매력적인 제목과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추수가 끝나고 이삭줍기마저 시들해질 때쯤, 큼지막한 벼 한 줄기를 발견한 농부처럼 얼굴의 작은 떨림과 함께 나의 손은 바빠진다. 이놈 저놈을 열어보고, 훑어본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놈을 뽑아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는 또 다른 세계가, 또 다른 사회가 있다. 여러 인물들을 만나서 그들과 대화하고 토론한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팔을 걷어 부치고 따지기도 한다. 작가에게 질문하기도 하고,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기도 하고, 작가가 독자에게 에둘러 하는 말을 눈치 채고는 남몰래 득의의 찬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렇게 처음 만나는 누군가와 한참을 정신없이 데이트할 수 있는 곳, 어찌 도서관에 오는 걸음이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아름드리나무 -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은 예부터 책과 글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 민족이다. 전통적으로 무(武)보다 문(文)을 늘 앞자리에 놓았고, 글 하는 사람을 귀하게 보았다. 책을 많이 읽어 지식과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약하고 가난할 지라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고 그를 정신적 지도자로 추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문화는 바로 책을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이어진다. 선비나 지식인이라면 으레 즐겨 읽는 책 여러 권을 머리맡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었고, 늘 가까이 하여 자기 심성을 갈고 다듬는데 힘썼다. 또 조금 여유가 있는 사대부가라면 따로 책을 두는 방을 마련하여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관수하는 데도 힘을 썼다. 함부로 책을 밟거나 깔고 앉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함부로 책을 넘어 다니지도 않았다. 이쯤 되면 책 관리가 아니라 집 안의 어른 모시기라고 할 수 있으니, 아마도 책 속에 이 책을 쓴 선현의 지식과 지혜와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이처럼 책을 귀하게 여기던 전통이 그대로 우리 도서관 문화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도서관에 가면 표지가 뜯겨지거나, 색깔 있는 펜으로 크게 글씨가 쓰여진 것 등 훼손된 책들을 보게 된다. 분명히 어느 누군가가 자기의 필요를 위해서 이 책을 읽었으리라. 그리고 그 책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를 뽑아낸 뒤에는 책의 가치도 사라져 버린 것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책의 가치를 ‘자기 필요’의 관점에서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책은 어느 누군가에게 일시적이고 일회적으로 도움을 주고 나면 그 생명을 다하는 한여름 개구쟁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도움을 베풀고, 필요를 채워 준다. 지친 이에게는 시원한 그늘이 되고, 집 없는 이에게는 목재가 되고, 화가에게는 배경이 되고, 바람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는 아름드리나무처럼 말이다.

 

 

- 광장과 밀실 -

책은 작가가 독자 개인들에게 건네는 인사이고, 우리 사회를 향한 외침이자 속삭임이다. 책 속에는 그 책을 지은 이의 고뇌와 이상과 꿈과 철학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쓸 때의 그를 떠올리다 보면 그의 한숨을 듣고, 그의 미소를 본다. 아니 그를 만나고 그와 대화한다. 이렇게 독서를 조금 깊이 하게 되면 그것은 책 읽음이 아니라 사람 만남이 된다. 작가는 이렇게 서재에서 광장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광장에는 분수가 있다. 수없이 많은 물줄기가 땅 속에서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작가의 목소리와 외침은 분수의 물줄기다. 머릿속 생각과 작가의 방 안에 갇혀 있던 사상과 철학과 아이디어가 책을 통해 도서관을 통해 광장으로 나온다. 땅 속에서 광장으로 솟구치는 분수처럼 지혜의 물줄기 힘차게 뻗친다. 책은 읽히는 그 순간부터 외침이 되고 목소리가 된다. 그러면 도서관은 거대한 광장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외침과 그 외침에 뜨거워지는 독자들의 마음은 광장이다. 한여름 달궈진 아스팔트 광장이다. 그리고 그 광장에서는 혁명이 일어난다. 내가 사는 현실의 부정함과 부조리함을 발견하고는 주먹을 쥐고, 붉은 힘줄이 오른다. 이 마음속의 혁명은 잠깐의 뜨거움으로 끝날 수 있고, 한 개인의 삶을 바꿔 놓을 수도 있고, 사회와 나라, 세계를 뒤집을 수도 있다.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틀어 놓은 사건들은 한 개인이 도서관에서 읽은 책 한권에서 시작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허균은 <호민론>을 통해 혁명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정책을 호되게 꾸짖었고, 이는 실제로 조선 후기 민중 봉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의 동학 혁명, 서양의 종교혁명, 산업혁명들은 여러 가지 직접적인 원인이 있지만, 그 뒤에는 책과 도서관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도서관은 조용하고 좁지만 인류를 변혁할 만한 혁명의 기운이 움트는 광장이다.

도서관에는 외침 뿐 아니라 침묵과 속삭임도 있다. 고요한 밀실이 있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도서관은 한없이 정숙하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 가면 유서 깊은 사찰이나 고궁에 온 것처럼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조용히 담소하는 연인의 대화를 방해할 수 없듯이, 아빠의 동화책 낭독 소리를 듣고 잠에 빠지는 아이를 깨울 수 없듯이 그렇게나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한글 창제를 반대하던 신하 최만리를 호통 치는 세종대왕의 목소리를 젊은 국문학도가 통쾌하게 듣고 있을 것만 같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남편 유한림에게 버림 받아, 쫓기는 신세가 된 사씨와 함께 마음 조리고 있는 중학생 소녀가 있을 것만 같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나 같은 평범한 독자보다, 작품 속의 인물들과 더 많이 속삭이고 밀회했던 사람들이 아닐까. 도서관 속에서 나만의 밀실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꾸며 낸 이야기를 실제 있었던 일인 양 꾸며대는 뻔뻔한 이야기꾼, 상처 받은 사람의 마음을 읊조리는 노래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 어디 보다 조용하지만 그 어떤 곳보다도 많은 대화와 사귐이 있는 곳, 넓은 공간과 많은 이들이 앉을 만한 벤치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곳, 만남의 광장과 사색의 밀실이 함께 하는 곳, 도서관이다.

 

- 다시 유리성 -

가파른 언덕을 참고 오를 수 있는 것은 그 끝에 있는 평지와 평지 저 쪽에서 불어오는 땀식이 바람을 기대함이리라. 언덕을 그렇게 오르고 나면 도서관 뒤 편 산에서 산 냄새나는 바람이 어떻게 알았는지 마중 나온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유리문을 통해 사람들이 가고 온다. 부지런하여 혹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빨리 승리하여 나보다 조금 먼저 온 사람들이다. 문을 통해 나오는 그들의 표정은 밝다. 그러나 가볍지 않다. 무엇인가에 몰두해 있다가, 열심을 내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러 나온 그들의 얼굴에서 삶이 보이고, 생명이 느껴진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서 갔던 새벽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보았던 아주머니 같다. 고등어를 높이 들고 크게 외치던. 자기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도서관을 찾는다. 자기를 미워하고 삶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은 도서관을 찾을 수 없다. 도서관은 욕망으로 가득한 곳이기에 그렇다. 무엇인가에 대한 강한 열망, 그것을 얻고자 하는 집념, 성실한 마음들이 있다. 꿈이 있고 이상이 있다. 꿈을 꾸고, 이상을 품은 그들은 허름하게 입었지만 누추하지 않다. 혹 가난할 지라도 궁색하지 않고, 약할지라도 비굴하지 않다. 화려하지 않지만 초라하지도 않다. 이렇게 도서관은 꿈, 희망,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에너지가 샘솟는다. 이것이 아침에 본 도서관이 유리성처럼 빛났던 이유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나는 오늘도 꿈이 담긴 가방을 어깨에 달고, 오르막길을 걸어 도서관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뿌듯한 상상을 해 본다. 아까보다 조금 더 밝고 강해진 유리성의 반짝임을.

posted by 온겸
2009/07/06 18:55 삶/斷想
중간고사 기간.
학생에겐 힘들고 고달픈 시간이겠지만, 시험 문제를 다 내놓고 이놈들이 잘 푸는지 테스트하는
선생에겐 짧으나마 여유를 가질만하다. 가뭄 속에 단비 같다고나 할까...
그 시험 기간 중에 학교에서 여학생 둘이 담배를 폈다. 얼른 쫓아 갔더니 지하 보일러실 문 앞에 쪼그리고 
흰 연기를 품어대고 있다. 교무실로 데려와서 물었더니, 2학년 녀석은 6학년 때부터 피웠고, 하루에 한 갑 피운단다.
기가 막히다. 하루에 한 갑을 피울 동안 부모는 뭘 했으며, 분명히 여러번 학교에서도 걸리고, 길거리에서 어른들도 봤을 텐데...끊고 싶은 맘도 없단다.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 잘 모르겠단다. 뽀얗고 보드라운 살겿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지 이제 겨우 14년 됐을텐데, 담배를 한갑씩 피우면, 평생동안 얼마를 피울 것이며 그동안 몸은 얼마나 망가질까?
세상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잘못된 길을 걷는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돈과 명예 때문에 아이들을 이용하고, 사람 아닌 것을 사람보다 더 사랑할 때 아이들은 그것을 배운다.
그들도 친구를 괴롭혀서 돈을 얻고, 짱의 지위를 얻는다.
반칙을 해서 성공을 하는 어른들을 볼 때, 아이들도 거짓말을 해서 이익을 얻고, 컨닝을 해서 좋은 성적을 얻으려고 한다.
어른이 되어도 맑고 깨끗했으면 좋겠다. 순수함을 읽은 사람이 어른의 정의라면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posted by 온겸